그새 사월, 일분기가 지났다. 열흘 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마테오는 돌아갔다.그와 이번에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어쩌면 접점이랄 것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과 파리에서의 추억은 그때의 추억대로 남겨 두겠지만 이제 뭘 더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는 나를 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함께 만들어 볼 수도 있을 만한 접점마저 없다. 다들 살기 바쁘고, 귀찮고, 타인과 정도 이상으로 가까워질 여유를 두지 않는다. 샘은 유튜브와 틱톡, 마테오는 유튜브와 웹툰으로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가볍게 볼 수 있는 그런 것들. 지윤이 해가 갈수록 감정이 말라 간다는 이야길 곧잘 했는데 회사를 다니면 다 그렇게 되는 건지. 다들 답도 없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 가만히 보면 나만 고뇌하고 있다. 나만 아주 좋아하고 아주 슬퍼한다. 그가 떠나던 날 또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랬더니 자기가 가는 것 때문에 슬픈 거라면 역까지 데려다 주지 않고 여기서 헤어져도 된다며, 가도 된다고 했다. 이별이 길수록 힘들어지지 않냐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렸다. 그는 슬프게 만드는 것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더 이상 슬프지 않은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운 것은 나 혼자였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나만 유난이다. 나는 왜 남들처럼 살지 못할까, 생각한다. 그걸 생각하면 외롭다. 외로움은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사는 어느 당신들에게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지만. 남의 마음 신경 쓰기 귀찮고 힘들고 어려운 건 나도 마찬가지다. 이제 그들에게서 연락이 오거나 이렇게 만나게 되는 것도 반갑고 기쁜 것에 앞서 버겁다. 혼자 유튜브 보고 영화 보는 게 편해, 나도. 너처럼.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같을 수도 있겠다. 사람에 관해서는 맥이 좀 없다는 접점. 내가 그와 헤어질 때마다 우는 건, 이제 내가 그를 먼저 찾을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보자고 말했지만, 난 잘 모르겠다. 부디 잘 지내.
Requiem for a Dream
오늘은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레퀴엠을 보았다. 이렇게 끔찍한 영화도 오랜만이다. 정말 한 명 한 명 모두가 처참하게 망가지는 영화였다. 사라는 전기 충격으로 온전치 못한 상태가 되고, 마리온은 마약을 위한 돈을 얻기 위해 성매매를 하기에 이르고, 해리는 감염으로 인해 한쪽 팔을 잃는다. / 이렇게 처참하지만 영상 연출은 무척 훌륭했다. 마약을 하는 장면은 짧은 클립으로 자주 본 적이 있지만 역시 잘 만들었다. 불연속적인 컷들이 아주 짧은 호흡으로 연달아 나오는데, 같은 방식으로 올라간 사운드와의 조응도 아주 좋았다. / 크게 해리의 스토리와 다이어트용 약물을 복용하는 사라의 스토리 두 갈래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나에겐 후자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 몸에 맞지 않는 오래된 빨간 드레스 - 젊음 - 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텔레비전 쇼에 출연하는 망상, 그에 관해서 사라가 오고 가는 환희와 공포의 교차가 정신 착란이 시각적으로 묘사된다. 그 기저에 깔린 것이, 늙었고, 외롭고, 더 이상 돌볼 것도 없는 노인의 마음이라는 것이 슬펐다. 향정신성 약물의 효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 쾌락을 위해 그것을 소비하는, 영화 속 나머지 인물들의 경우와는 달랐으므로.
이달의 월세를 보냈다. 천 파운드씩 빠져나갈 때마다 이곳에서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