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oslo, norway

February

09 FEB 2025

The rugs arrived. Two rugs, unfortunately. I was staring at the rugs for almost an hour. I had Mateo to help me choose the colour. He chose the colour. The colour was chosen by him. He made the choice. The choice made by him. It was a good choice. Not too light. Not too bright.
I am having hard time focusing on things. I feel tired all the time and my body is heavy. I don't want to feel my body. I will feel it even more and more as I get older. All I can feel will be my body in the end.
Sometimes I prefer to have no sound. Sometimes the opposite. I clearly understand this is ending. This is going to end.
Women who want things cannot stay beautiful and calm. They have no choice but to get ugly, furious, impatient. Because it wouldn't work if they stay silent. People think they don't have problems, that they don't need assistance. I am thinking of all those disadvantages I might get by deciding to stay calm. But it is also true that anger never helps. The double truths.
I don't belong to any part. There is no seat for me. There is nothing wrong with the city. It's me. I am the one who's not taking part. I refuse. I strongly refuse to be a part of a community. I don't want to be explained by other people than myself. But can you live solely by yourself? That must be a problem. What is wrong with people exchanging their abilities with each other? Why do I loathe so much?
'irresponsible'. Sam always spill words and then take it back. The withdrawl. He felt irresponsible after a few seconds. 'so what?' He is afraid of disappointing someone. making false hopes, the hopes that he's not sure if he could keep. He does not want to be blamed, for not keeping the promises. Mateo said he loves me and told me he will prove his love. He proved the opposite. I was hurt. And that cannot be his fault. He once truly felt that way, said it to the one he was with at that time. Things are only valid for a certain period.
I fully believe what I say even if I change my word the next day. They don't want to be accused of the things that will possibly turn out to have been a mistake. But doing nothing is even more irresponsible.

11 FEB 2025

Now learning: Hypertext Markup Language and Cascade Style Sheet.
Stayed all day in my room again. Now I understand how the webpage works.

12 FEB 2025

같은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일이란 누군가의 수고를 덜어주는, 그러므로 시간을 벌어주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에 쓸 시간을 줄여주는 일. 어쩌면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좋음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써야 할 것에 시간을 쓰고 쓰지 않아도 될 것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
1. 디자인은 어떤 일의 불필요한 수고를 덜어 주는 방법을 제안하는 일이다.
2. 예술은 사람들이 시간을 써야 하는,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는 누리고 누군가는 누리지 못할 뿐이다.
예술은 중요한 어떤 것이다. 이 사실은 나에게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다. 이것은 나의 진실이다.
그가 또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I dunno what to do about me and you. 네가 아무 말도 하기 전까진 문제가 아니었는데. 왜 너도 모르는 걸 나에게 묻는 거야?

15 FEB 2025

배움터로서의 학교. 나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있다기보다는 내가 나에게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 깨우치는 중이다. 학교에 다닐 때도 이렇게 했어야 하는 건데.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삶. 요즘은 그렇게 살고 있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특권이다.

Time to destroy, before it gets uglier. They are closing the portal.

16 FEB 2025

구글시트로 데이터를 옮겨서 정리했다. 여러 시트를 하나의 파일에 넣을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오늘은 서로 다른 블록 구조의 기능과 디브까지 배웠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기대 이하. 더 글로리에서도 그런 식으로 페인터의 이미지를 소비하더니 또 페인팅을 끌어들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풀메이크업에 풀착장을 하고 페인팅을 하는 건 너무 현실과 거리가 멀다. 성아가 지니 돈의 출처가 결국 그 가족의 재산이라는 것도 너무 단순하다. 서사에서의 어떤 문제점을 해소하는 데 그런 요소들을 가져와서 급하게 해결해 버리는 것. 한편 기득권자와 상대적 빈곤층의 대치로 구도를 가져가는 것은 한국 드라마를 늘 고루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조디 코머가 연기한 킬링이브의 빌라넬이 연상되는 싸이코패스 살인자 캐릭터. (얼마 후 고민시 배우가 방송에서 빌라넬을 언급하는 것을 보았다. 참고한 것이 분명하다.) 고민시 배우의 연기는 그만큼 매력적이고 새롭다기보단 어딘가 거칠게 느껴졌다.

17 FEB 2025

이제 뭘 해야 할지 생각해. 언제나 따라붙는 의문. 그게 정말로 중요한가? 나와 그들에게, 동시에.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한다.
오늘은 새로운 아이디를 고안했다. 내 이름과 최대한 닮아 있으면서 구글 서버에 없는 글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e와 g를 c와 q로 바꾼 것이다. 모양만 닮은 다른 글자들로. 기막힌 발견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해서 인스타그램 계정도 같은 이름으로 마련해 두었다. 노션과 즐겨찾기에 모아둔 링크들을 전부 구글시트로 옮겼다. 이제 그 시트와 이 웹페이지에서 모든 작업이 시작될 것이다.
Sam에게 주정을 부린 이후론 더 이상의 연락이 오가지 않고 있다. 그는 날 힘들게 하고 있다. 더 이상 그의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 것이 반갑지가 않다. 너무 오래된 일이고 점점 더 진창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가 몇 시간 후 해제하기를 반복했다.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 나를 잊었으면 좋겠다.
디자인 관련 리소스를 얻을 수 있는 웹페이지들을 정리했다. 문득 작업에 관해서는 내가 대체 어떤 리소스를 활용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 질문은 여러 차례 외부에서도 받았던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습니까. 영감이라는 말은 마치 신내림과 견주어야 할 것처럼 신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단순히 말하면 그냥 작업의 원천, 작업의 연유 내지 동기 정도가 될 것이다. 그 동기라 함은 너무 자의적인지라 사실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말이 된다. 석사까지 와서도 모든 과제에 규칙이 없었던 것도 내가 하는 일이 필연과는 거리가 멀어서이다. 내가 근래 코딩과 디자인에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 결핍된 필연성을 갈구하는 상태여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갈구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와 ‘진짜'인데, 그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을 내가 구해내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사람들 지갑 열게 하는 디자인 말고, 정말로 이로운 것을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통 모르겠다. 그림도 결국 상품일 뿐이고, 마찬가지의 경제원리가 작용된다. 그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란 없는 것일까? 이제 내가 하려는 것과 무관한 일로 용돈벌이를 할 때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마음과 시간과 돈을 들일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그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언제라도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서 살게 될지에 집중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저 따라오는 것이다. 무엇이 그것을 가져다 줄지 생각해야 한다.
한국은 남의 것을 주구장창 따라하다가 종국에는 일종의 요령을 확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가운데 정말로 깊이 있는 것이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어느 단계에 도달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보이는 것들을 따라하다가 내 것을 찾았다. 필름 카메라를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고등학생 때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람의 이미지가 좋아서였고, 사소한 것들을 편집해서 올리는 취미를 붙인 것도 어느 누군가를 따라서였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집 근처에 생긴 아트나인과 내가 만난 어떤 사람의 영향이었다. 그 이후로는 오랫동안 아무도 따라하지 않았다. 이미 내가 생겼으니까. 그런데 어쩌면 이제는 새로운 인풋이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센스를 보고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참고하려고 한다. 잘 만든 것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말해진 내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이다. 말은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어떠한가.

21 FEB 2025

어제와 오늘, 잠도 안 자고 끼니도 거른 채 미친 사람처럼 웹페이지를 가공했다. 작년에 밤샘작업을 하고 얼얼해진 몸으로 아침에 귀가하던 것이 떠오른다. 이것이 원하던 대로 돌아가면 갑자기 저것이 작동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나를 고치면 나머지 페이지들을 일일이 수정해야 하는 것은 초심자라서 생기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고생 끝에 아카이브 페이지도, 내 공식 웹페이지도, 이 일기장도 적당히 마음에 드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코드를 조금 읽을 줄 알게 되니 어딘가 잘 되지 않을 때 배운 대로, 혹은 검색을 통해서 해결책을 찾아낼 수가 있다.
오래 배우지도 않았는데 이 짧은 기간 안에 습득한 것 치고는 아주 잘 활용하는 중이다. 생각보다 CSS에 없는 기능이 꽤 있고 어떤 원하는 효과들을 구현하는 방법을 알아서 찾아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br'로 거의 모든 레이아웃을 해결했었는데 그건 효율적이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방식이었음을 깨달았다. 'div'에 입힌 여백 수치를 모든 페이지에 적용하니 스페이스바를 몇 번 눌렀는지 확인해가며 작업하지 않아도 된다.
어제 사온 콤테 치즈를 오랜만에 맛보았다. 역시 맛있다. 한국에서 주문한 것 이후로는 처음 먹으니까 약 세 달만에 먹는 것이다.

22 FEB 2025

버건디에 가까운 어두운 레드로 몇 차례 손톱을 칠했다가 어제는 좀 더 밝은 체리빛으로 바꾸었다. 다시 보니 핏빛에 가깝다. 오늘도 정오를 넘겨서야 눈을 떴고 일어나자마자 늘 하던 것처럼 아침을 준비했다. 첫끼는 시간과 관계 없이 아침이라고 부른다. 리버풀 스트릿으로 바쁘게 걸어가서 서클 라인을 타고 임뱅크먼트에 내린 것이 상영 시간 10분 전이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착석했다.
오늘따라 날씨도 그렇고 모든 것이 꽤 순조롭고 유쾌하게 흘러갔다. 별로 불운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I didn't feel unlucky today. 그렇지만 행운으로 가득 찬 충만감이 들었던 것은 또 아니다. 같은 이유로 마음이 가는 표현이, not a big fan 이라는 표현이다. 어떤 것에 대한 불호를 다른 방식으로 alternatively 말하기 위해 누군가가 처음 쓰기 시작했을 표현. 제가 그것에 열광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수동적인 의사 표현. 그러나 열광하는 어떤 사람들을 고려하는 말이다. 그래서 좋다.
I am currently not in a relationship. I am currently not working. What is the difference?
어쩌면 나는 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선택권은 언제나 나에게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군가와 함께하는가, 함께하지 않는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을 그만 느껴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의식적인 죄스러움을 달고 살았으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영원히 부모에게 빌어먹고 살 작정도 아니라면 나는 그저 유예 중인 사람일 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이 시간을 값지게 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금 더 편안해지도록 하자. 그래도 된다. 연애하지 않아도, 결혼하지 않아도, 일하지 않아도, 그림 그리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할 때는 저절로 선택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언젠가 내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어떤 일을, 어떤 도시를 원한다면 그것을 위해 나는 무언가를 할 테니까. 그것을 내가 언젠가 원하게 될 날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당장은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도 나는 할 수가 없다.

24 FEB 2025

집에서 출발할 시간까지 그냥 누워만 있자고 생각했는데 걱정했던 대로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땐 6시 40분이었다. 어제는 유독 몸도 마음도 늘어져서 누워 있고 싶었다. 더 자고 싶어서 비행기표를 새로 사고 더 잘 수 없을 때까지 자고 일어났더니 오후 세 시였다. 마르세유에는 내일 세 시 반에나 도착할 것이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이미 그곳에 가 있었을 텐데, 꼭 수업을 빼먹고 카페에 와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냉장고에 남은 달걀과 오이를 짜파게티와 함께 먹어치웠다. Sam과 당분간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잘 모른다.

28 FEB 2025

이목하 작가의 그림이 2억에 팔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와 같은 나이대의 세종대 출신으로 학벌이 최고라고 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런던에서 학위 과정을 밟은 것도 아닌데 개인전을 한다. 그런 걸 보면 왜 이 무수한 페인터들은 주목 받지 못하고 그는 2억에 그림을 파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 세상은 재능대로만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서 내가 그자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도, 그자가 반드시 천재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페인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매력적이고, 그 매력에 환호하는 고객층을 만드는 것이 관건일 뿐이다.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혜리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브루탈리스트를 보고서 그런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어떤 한 사람이 그 외력들에도 불구하고 자기 비전을 관철시키고 그것에 천착하고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어쩌면 그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난 역할이랄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답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좋은 예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것을 보고 이런 걸 더 보기 위해서라도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것. 보는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것. 그러나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답변임을 알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작업자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에 시간을 종종 쓰고 있는 요즘, 디자인과 파인아트를 불문하고 좋다고 느끼는 것과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의 차이를 파악하려고 하는 중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비주얼 디렉팅은 나에게 호소하지 못한다. 남은욱 선배가 참여한다던 ’다다‘라는 레이블은 그새 팔로워 수가 k를 찍었다. 오혁의 파급력이 컸을 테지만 그들은 시대 흐름을 서핑하듯이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비주얼을 선보인다. 몇몇의 잘 나가는 브랜드들이 표방하는 미끈한 감각들도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눈을 현혹시키고 그렇게 해서 지갑을 열게 만드는 이미지. 그것들이 과연 이로운가? 나는 그런 것들보다 역시 구닥다리 장인이 몇 세대에 걸쳐 제작하는 아주 사소한 생활용품 같은 것에 더 큰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 구닥다리 제품들은 애초에 테크닉과 디자인의 탁월함으로 시간을 초월하게 된 것들이다. 매해 새로운 디자인과 물건들이 출시되는데, 그것들보다 오래된 것이 더 낫다고 믿게 만드는 것도 대단한 힘이다. 게다가 그것들이 나머지 제품들에 비해 언제나 고급인 것도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모두에게 이로운, 모두의 생활을 편하게 만드는 물건이기도 하다. 혹은 충분히 좋은 내용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레이아웃을 마련해주는 일도 무척 가치 있게 여겨진다. 그것들은 본래 형체가 없는데, 그것을 가장 훌륭하게 실체화할 수 있는 ’몸’을 설계하는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고 그 형체 없는 것들의 목소리를 키워 주는 확성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페인팅은 그 모든 것들에 비해서는 가장 오만한 매체이다. 이 매체의 오만함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다. 페인팅은 고액에 거래되고 돈을 지불하는 누군가에 의해 소장되는 것이 수순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 마르세유는 온 도시의 모든 표면이 캔버스라도 되는 것처럼 낙서들로 가득하다. 더 이상 그릴 공간도 없이 빼곡히 찬 캔버스 같다고 느낀다. 적어도 그것들은 어느 개인이나 갤러리에 의해 소장되지 않는다. 그것을 보기 위해 입장료를 낼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 그래피티 하나 하나는 어느 개인의 서명이고 그들의 목소리이다. 이것은 어제 본 퍼포먼스에서 거울을 든 개인들이 빛으로 벽에 그림을 그릴 때 그 모양이 제각기였던 것과도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각각의 존재가 빛으로 발자국을 만들고, 그것들이 그 공간에 있는 모두와 공유되었던 것처럼, 이미 모두가 아티스트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그 셋팅을 만든 작가는 그자 스스로 무언가를 창작했다기보다는 모두가 실시간으로 창작하는 환경을 조성해 준 것이다.
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에서 내놓는 작업물들이나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외부인으로서 지켜볼 때 내가 느끼는 것은 일종의 ‘오글거림‘이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가르침과 배움을 주고 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외부의 것과는 무척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거의 종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얼핏 보면 소꿉장난 같은 지극히 유희적인 활동, 이를테면 ‘대청소하고 찐빵 먹기’ 같은 아무것도 아닌 이벤트를 마련하고 그것을 그래픽 작업물로 엮어 내는 방식을 쓰는 것 같은데, 그것이 날조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거기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3 Body Problem
이곳에 있는 동안 쓰리 바디 프라블럼을 다 보았다. 조금 더 고전적인 분위기의 아카데믹한 드라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구 멸망과 외계와의 전쟁을 다루는 공상과학물에 가까웠다. 드라마에서 물리학자들은 그 전쟁의 테크놀로지 인트라를 마련하는 데 자기 능력을 할애하는데, 그것이 대량 학살의 무기로 쓰이는 경우들이 등장한다. 인물들 간의 주된 갈등은 이것이다: 400년 후에 비로소 전쟁이 도래할 텐데 그때 자신들은 이미 죽고 없다. 이것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가. 주요 캐릭터인 중국계 호주인 Jin은 현재의 안위보다도 대의를 위해서라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Ye 박사와 닮았다. Will은 인류가 아닌 Jin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제물이 되기를 택한다. 그를 제물로 둔 실험은 어떤 작은 오차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냉동된 그의 뇌는 우주를 영영 떠도는 꼴이 된다. 이 드라마는 인간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경각심, 종교와 믿음, 대의와 사의, 희생의 문제를 동시에 건드린다. 알 수조차 없는, 저만치 앞서나가 있는 외계를 상대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신봉하며, 그들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가면서까지 하수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반면 Jin과 Wade 같은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항거한다. 인간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불가지의 영역을 산티라는 외계인의 형태로 가시화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이 정말로 확실한지 다시 한 번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지금, 우리끼리 서로 죽일 때가 아니라 더 큰 공동의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같은 입장임을 강조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세상이 가엽다. 나도 가엽다. 누군가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고 다른 누군가는 겪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어느 누구도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폭력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호텔 근처에 있는, 창고에 가까워 보이는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든 생각은 울적함이었다. 매주 이곳에서 장을 봐야 한다면 너무나 불행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인 사람에겐 이 말조차 모욕적으로 들릴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것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나는 그들을 도울 수 없다. 그들도 나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 게다가 난 이미 중동과 아프리카계의 문화가 만연한 거리들 사이를 걸으면서도 그 산만함을 견디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어딘가 불안정하고 더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대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마음을 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대체 무슨 일에 내 육체와 정신을 할애하며 살아야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돈을 아주 많이 벌게 된다면 그 돈을 나는 내가 누린 것들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

29 FEB 2025

CV에 한 줄 더 들어갈 활동 하기 vs 돈 벌고 모으기. 자, 이번에는 새로운 모델이다. 내가 하는 어떤 일 A가 B로 이어지고 또 B가 C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구조의 모델. 내가 몇 년 전 비슷하게 고안했던 것은 그것들이 전부 다른 직무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테면 제빵을 배워서 그것으로 일을 하고 그 돈으로 프랑스어를 공부한 뒤 프랑스어 선생님으로 공부하고 또 그 돈으로 다른 것을 하고 또 하는 모델. 지금 생각하면 그 돈으로 그것이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지난 해 파리에서는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여름이어서 생명력이 넘쳤던 것일까? 런던에서 나는 왜 작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내가 런던에 위치한 번듯한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고 한다면, 그래서 모든 렌트를 내가 감당하고 생활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된다면 난 여기 살고 싶을까? 사실 꼭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아직 살아보지 않은 곳도 가보지 않은 곳도 정말 많아서, 여기가 최고라고 벌써부터 뼈를 묻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프랑스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도 다시 제대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이제 나는 영국이 그리 낯설지가 않다(애초에 그랬던 적도 없긴 하지만).
그림을 팔기가 싫어졌다. Yolanda는 내 그림을 꼭 소장하고 싶은지 또 나에게 DM을 보냈다. 이렇게 한 점 팔아서 나에게 남는 것이 뭘까? 몇 달 전의 마음으로는 어떤 사람이 내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내가 만드는 것들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큰 힘을 얻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난 내 작업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검토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1. 내가 살고 싶은 삶의 형태와 2. 페인터로서의 삶이 조응을 이루는 데 자꾸만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어긋나 있는 것이다. 이게 언젠가 끝나야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페인터로서의 나는 죽어야 한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유, 이걸 끝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림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혹은 파인아트 전반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실은 내가 원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나는 솔직한 작업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결국 내 그림들은 ‘미’에 관한 것이다. 그것을 덜어내면 사실은 아무런 이야기도 내용도 없는 그림들이다. 이 세상을 보고 내가 포착한 것들, 그것들을 내가 그림으로 그려야 할 이유를 찾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유는 대충 만들었고, 그릴 것이 필요해서, 그리는 일을 내가 좋아하니까 그렸다. 그렇게 해서는 별로 진행될 것도 설명할 내용도 없다. 사실 작가의 의도라는 것이 작가 자신만 알고 있는 거라서 그 내용을 거짓으로 말해도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그 내용을 믿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거의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안다. 자기가 지금 하는 말에 아무런 진정성도 절실함도 없다는 것을. 내가 지금 그런 작가다. 사람들에게 칭송 받더라도, 전시회가 끊이지 않고 그때마다 모든 그림이 팔리더라도 나는 언제나 정직하지 못한 기분으로 살게 될 것이다. (잠깐, 애초에 그림이라는 건 정직에 관한 문제가 아닌데? 그림도 작가도 정직해야 할 필요가 없어. 아니, 어쩌면 정직함과 거리가 멀수록 더 나은 예술일 수도 있어. 이건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가공한 픽션이잖아. 픽션이 현실과 완전히 같으면 오히려 실패에 가까운 게 되는 거라고.)

WORKBOOK 1984 - 2024
나이젤 사프란의 워크북 사진집을 어제 뜯어서 한 장씩 ‘읽었다‘. loose Joint사의 책방에서 샀으니 마르세유까지 가서 산 보람이 있다. 내용이 다시 봐도 좋아서 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1984년부터 2024년까지 40년 동안 그가 찍은 사진들을 한데 모은 것으로, 노트를 그대로 스캔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가 수기로 가볍게 적은 캡션들과 드로잉들, 그의 삶에 등장한 각종 인쇄물들 따위가 사진과 함께한다. 사진이 주를 차지하는, 삶의 부스러기들을 담은 기록물이다. 그렇지만 딱히 다이어리라고 하기엔 그리 사적인 감정들이 들어가 있지는 않다. 사진을 찍은 날짜와 장소, 인물이라면 그 사람의 이름 정도로 아주 설명적인 descriptive, 그러므로 기능적이라고 할 수 있을 캡션들이다. 마치 도넛을 만든 블렌드 파일을 doughnut.blend라는 파일명으로 저장하듯이. 이 방식은 나의 제목 짓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이다. 나는 제목을 공들여 짓는 편인데, 텍스트가 이미지에 행사하는 힘을 도구처럼 쓴다고 할 수 있다. 아, 생각해 보면 그것이야말로 일종의 사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그림에 그려진 것과 거의 무관하다시피 한 것을 제목으로 붙이곤 하지 않는가. 그건 어쩌면 이미지가 텍스트의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수도 있다.

marseille, france

마르세유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햇살이었지 아마.
햇살 소독. 샤워헤드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처럼, 대신 물이 아니라 햇살이.

I am now sun-kissed.

March

01 MAR 2025

오늘은 여행을 갈무리하는 날. 계획했던 몇 가지를 전부 완료했다. 빨래, 장보기, 한 페이지 총평 남기기, 리코로 촬영한 사진 정리까지. 며칠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이 정도면 쓸만한 사진 분량이 나왔겠다 싶었는데 편집을 하면서 생각보다 형편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광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을 방문할 때면 생기는 문제였던 것 같다. 카메라 화면으로 보이는 것이 너무 어두워 보일지언정 하늘의 빛을 살리려면 무조건 노출을 낮춰서 찍어야 한다는 점을 잊었던 것이다. 결과물이 들쭉날쭉이라 보정을 하는 데도 손이 많이 갔지만 그 결과물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과한 편집을 애초에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마음에 안 든다고 성형을 하듯이 끝도 없이 조정하다가 내가 봤던 풍경과는 딴판인 어떤 것이 나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난 디지털과 필름 둘 다 써가면서 지금 벌써 10년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심지어는 직접 현상과 인화까지 하던 시기가 있을 정도로 이걸 팠던 사람인데 이 정도라니,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한다니 스스로에게 약간 실망했다.
마르세유에서 가져온 ‘샘플'들의 제본 방식을 살폈다. (1) 루즈조인트 홍보물 책자. 전지 기준 2등분-2등분-2등분 세 번을 하면 여덟 장이 생긴다. 페이지로는 16페이지. 각 페이지에는 신간 소개가 실려 있고 뒷면 전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넣어서 포스터처럼 활용하도록 구성했다. (2) 칼로 뜯어야 하는 제본 형태는 2년 전 파리에서 처음 봤다. 왜 그런 게 생겼는지 궁금한데 아마도 한 장으로 지면을 더 많이 쓰기 위해서 마련된 방법일 것으로 추정된다. 전지를 3등분한 뒤 그것을 둘로 가르면 6개의 페이지를 실을 수 있는 세 장이 두 세트 생긴다. 그 두 세트를 2등분으로 접으면 두 배가 되고, 각 12페이지가 된다. 둘을 함께 제본한 것이 내가 구입해 온 레시피북의 제본 방식이다. 총 24페이지. 물론 두 방식의 실질적 면적은 같다. 다만 종이 값을 고려할 때 더 많은 페이지를 만들고 싶었던 누군가가 고안해 낸 형태가 아니었을까.
더 이상 소식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이 내게 안부를 물어올 때 당황스러운 기분이 든다. 석과 성민, 그리고 다시 만나기까지 한 윤서. 제대로 사랑한 것 같지도 않은 순현 빼고는 어쩌면 모두가 사랑이었던가. 그들 모두가 나를 간혹 가다가 떠올린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나는 근래 명민과 영인, 지우, 혜리, 지윤과 정화를 제외하면 모두에게서 잊혀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그들은 그 목록 가운데 없었기 때문이다. Sam은 4월에 영국에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를 만나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도 한다. 그대로 아름답게 남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때는 정말 순수하게 함께 있는 시간을 오롯이 마음에 품었는데. 나는 이 세상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욕심을 버린 지 오래다. 나는 그래서 런던은커녕 서울조차 제패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한데, 그와 내가 함께하려면 속박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세상에 어필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미래 없는 만남을 지속하는 것이 두렵다. 그를 무척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긴 해도, 나를 인스타그램에서 왓츠앱으로, 왓츠앱에서 아이메시지로 쫓겨오면서까지 연락을 지속해 오는 걸 보면 그도 날 꽤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도. 그는 오늘도 내게 행복해지고 싶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는 행복을 남에게서 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마르세유에서 본 잡화물점에서 마테오가 쓰는 페퍼 그라인더를 봤다. 고가의 주방용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는 그. 마르세유에 대한 인상을 가감없이 공유했는데 어쩐지 성가셔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복잡한 것들을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브루탈리스트를 즐기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고, 어쩌면 나는 그에 비해 너무 무거운 것들을 껴안고 살기를 자처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늘 똑바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니까. 헤어질 결심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말보다 사진을 고를 사람이고, 그는 말로도 충분한 사람인 것 같다.

04 MAR 2025

다시 웹페이지 언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도 웹의 언어도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언어를 쓰지 않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그것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 언어는 쓰지 않으면 까먹는다는 것. 그러니까 한 차례 길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멈추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달리기 같다. 페이스 조절과 현상유지.
결국 한 차례 실험 삼아 만들었던 notes 페이지를 정리했다. 여러 개의 페이지를 동시에 관리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니까. 대신 독자적인 페이지를 매달 VS코드로 만들기로 했다. 어쩐지 다른 어떤 프로그램으로 글을 쓸 때보다도 사적인 느낌인 느낌이 든다. 나는 그러고 보면 정말 오랫동안 내가 살면서 남기는 데이터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 늘 고민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pages를 적극적으로 쓰던 때가 있었고, 아이폰 메모장을 제일 자주 쓰던 때도 있었다. 인디자인이나 포토샵, 라이트룸 따위의 프로그램들도 나의 필요에 따라서 무척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2025년 내가 새롭게 익히는 중인 HTML이라는 웹언어는 나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한때는 그렇게나 중요하게 여기던, 수기로 기록을 하는 빈도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이 시대, 그리고 이 시대에 속한 나의 정신이 움직이는 속도, 수정의 용이함, 그리고 종이와 공책들이 차지하는 공간을 고려한다면 디지털라이징의 이점을 이용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 적합한 방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몰스킨에 일기를 쓸 때와 달리 infinite scroll이 가능하다. 페이지를 단위로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따라갈 수 있는 것이 디지털 필드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쪽수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어쩌면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없는, 두께가 없는, 영원한 현재뿐인 세계. 그런 형태의 공간에 자꾸 익숙해지는 것은 히스토리를 잃게 될 가능성을 포함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은 선형적인 시간관념을 통째로 폐기 중인 사람이다.
난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평생 동안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서 살고 싶은 것 같다. 아무래도 나에겐 에너지가 없어. 그림을 그릴 힘이 없다. 셔터를 누를 힘은 있다. 컴퓨터 자판을 누를 힘은 있다.

05 MAR 2025

한국에 돌아가는 것을 생각할 때, 이곳과 그곳을 비교할 때 싫음이 즉각적인 나의 감정이다. Sam에게 한국에 관해 하는 말들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 차려 입고 거리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보기가 싫다고 했어. '거기 사람들'은 뭘 내추럴하게 즐길 줄을 모른다고. 그러니까 촌스럽다는 말을 난 풀어서 한 거야.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한국을, 그곳에 속해 있던 내가 잠시 그곳에서 물리적으로 먼 곳으로 떨어져 와서 가만히 살펴보자면, 다 같이 일만 하다가 불행하게 죽는 것을 조장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사회 활동을 해본 적조차 없지만.
무한한 경쟁 구도.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비교하고 자기를 깎아내리고 그런 열등감으로 나아가는 병적인 열정, 그러니까 가짜 열정이다 그건. to reach the level - who knows where. 그러니까 모두가 시작점이 다른 거야. 그 서로 다른 시작점으로부터 얼마나 움직이는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는 각자의 몫이지. 그런데 누군가는 이미 그 지점에 도달했고 다른 누군가는 아직 이르지 못했어. 1세계는 여유를 부릴 수가 있지만 그 나머지는 그럴 수가 없어. 나는 잠시 일을 안 하고 살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도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잘 곳이 없기도 해. 우리 이전 세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노동한 대가로 이만큼 왔다는 걸 결코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건 인간일 뿐인 우리를 과대평가하는 체계야.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갈아 넣어가면서, 아니, 우린 하지 않아도 돼. 난 모든 것을 열심히 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런 과거가 현재에도 미래에도 지속되기를 나는 바라지 않아. 내가 번 돈을 나를 위해 쓰고, 내 다음 세대, 나의 자식이 번 돈은 그 자신을 위해 쓰기를 바란다.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좋을까?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나머지를 보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1세계에 속한 사람에게, 부유한 남성의 궤도에 편승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계획적으로 그렇게 한다. 느리더라도 제대로만 가면 돼. 맞게 가고 있는 거지? 아니,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면, 다시 제대로 찾아가면 되지. 탈진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한다. 타고난 힘이 없어서, 혹은 너무 오래, 그리고 멀리 움직여서.
예술은 이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 가운데 가장 비합리적이고, 생산의 행위와 그보다 가까울 수 없는 동시에 너무나도 비생산적인 활동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정당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공공연하게 할 만한 일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태생적으로 몰래 하는 일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마테오에 대한 마음이 말라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정말 그 마음이 말라 죽을까봐 무섭다. 그가 날 더 이상 기쁘게 하지 않는 순간이 오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 순간은 오지 않았으니까 때이른 걱정은 그만둔다.
오늘은 오랜만에 내셔널 아트 라이브러리에 다녀왔다. 도서관은 늘 나에게 안도감을 준다. 영화관도, 미술관도, 묘지도 그렇지만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각자 움직이고 있는 운동장 같은 그런 공간들. 조금 걸어서 리버풀 스트릿으로 가면 한 번에 도착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괜히 먼 걸음처럼 느껴져서 쉽게 마음을 바꾸곤 했던, 벼르고 벼르던 방문이다. 가면 예약해 둔 책을 찾아서 읽다가 돌아오는데 책을 하루만에 끝내는 경우는 없다. 그래도 오늘은 두 시간 동안 서문과 첫 번째 챕터의 대부분을 읽었다. 요즘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전부터 읽고 싶었던 이 책은 자본주의와 디자인의 관계를 파고드는 책인데, 기원전 화폐의 출현부터 시작하는 역사서에 가깝다.
매일 조금씩 책을 읽는 버릇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실을 매일 하나씩 익히기만 해도 세상을 조금 더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저자 한 명 한 명의 관점이 내 안에 들어와 자리잡게 된다면 말이다. 영화를 많이 봐서 좋은 점은 연상의 범위가 확장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혹은 어떤 현상을 봤을 때 떠오르는 비슷한, 그것과 연관시킬 만한 어떤 영화의 장면이 나와 늘 함께한다는 것.

Neighbourhood is important. Focus on the things that are close-by.

07 MAR 2025

내 패션의 모티브는 댄서와 아슬레틱이야. 춤추듯이 걷기, 정수리까지 척추 곧게 펴기.

어제도 영인과 늘 그렇듯이 신나게 떠들었다. 어제 멍청하게 10파운드씩이나 팁으로 줘버린 꼴이 되었다. 하루만에 거의 100파운드를 태웠네. 술 마실 때 영수증 챙기기. 그는 내가 영국에 남기를 바라면서 이런 저런 방법들을 열심히 제시하며 날 설득하려고 한다. 그는 회사원의 마인드로 사는 사람이다. 지윤과 그래서 비슷한 느낌이 드나. 그런데 난 연구자의 마음으로 산다. 계속해서 연구하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을? 그건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 (잊지 않게 늘 되새겨야 할 것들이 있는 법입니다.)
11시 반, 예매해 둔 영화를 보기엔 한참 늦은 시간에 일어나버린 탓에 바비칸 시네마로 다시 예매했다. 집을 나서는 길에 공원에서 피리 부는 남자를 보고 여행자의 필요를 떠올리며 슬며시 웃음지었다. 술 마신 날 다음의 익숙한 갈증을 달래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걸으면서 마셨다. 미키 세븐틴, 노아 데이비스, 체코 필하모닉의 쇼스타코비치 콘서트.

MICKEY 17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What's it feel like to die? 언제나 계층과 시스템의 문제를 파고드는 감독 봉준호. 컨셉추얼한 면은 여전하다. 디스토피아적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설국열차와 옥자의 또 다른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새로운 행성으로 문명을 이동시키기 위해 떠나는 우주 탐사선. 최신 테크놀로지와 정치, 미디어를 동시에 끼고 있는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구조적으로 아주 흥미로웠다. 영화는 크게 17번째 에디션으로 '프린트'된 미키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이야기로 구분된다. (1) 영화의 첫 장면은 얼음 골짜기 틈으로 추락한 미키의 현장. 추위로 죽는 결말이 17번째 미키의 예정된 결말이지만 creepers라는 외계 생물의 개입으로 그는 생존하게 된다. 그 외부자의 도움은 미키를 도구화하는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장면이 영화 중간에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이미 본 장면을 다시 보는 관객은 마치 같은 곳에서 영화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주는데 이건 미키가 늘 갓 뽑아낸 새로운 몸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는 감각과 궤를 같이하기도 한다. (2) 그 이후의 이야기는 지킬과 하이드의 자아 분열이 연상되는 내러티브로 흘러간다. 미키 17이 우유부단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미키 18은 조금 더 악랄하고 저돌적인 면모를 지닌 캐릭터이다. 하지만 결국 그가 스스로 희생적인 죽음을 택하면서까지 순응보다는 저항하기를 원하는 인물이고 그 선택을 실제로 감행한다는 점에서 18의 캐릭터를 악인으로 바라보기도 어렵다. 같은 몸을 지닌 두 캐릭터가 어떤 중립적인 병존 관계, 갈등과 상호보완적인 두 자아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못된 인간으로 그려지는 쪽은 시스템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이 현재 그렇게 흘러가고 있듯이 인간은 너무나도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그것에 대해서 문제점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그 악행을 지속하며 생존해 왔다.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서사로서 이 영화는 아메리카 대륙을 멋대로 갈취했던 침략의 과거나 제국주의, 우생학적 태도로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 등 폭력의 역사를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이 몰살해야 할 벌레로 취급하는 외계 생물은 폭력적인 면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하기도 힘든 존재로 그려진다.
Mickey who was supposed to die survives. The moment he meets 18th edition of himself, another narrative begins. The first part is what Mickey already knows - his history. Through narration, he tells the story of the past - sharing to the viewers what has happened until 'then'. The film begins once again in the middle of the film. Now he doesn't know what is going to happen - the story is no longer follows his own point of view. It takes a broader spectrum of views.

Noah Davis
그의 페인팅은 사진에 크게 의존하지만 그 표현 방식은 무척 회화적 painterly 이다. 마크 로스코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를 반영하는 물성에 집중한 표현들이 더러 눈에 들어왔다. 그의 source material은 인터넷이나 플리마켓 등에서 발견한 '보통 사람들'의 스냅사진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인스타그램에서 스크랩하는 이미지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컨텐츠란 어쩌면 그 자신의 것과 나머지 모두의 것을 합친, 무개성적인 일상의 이미지인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 무게 없이 부유하는 이미지들을 회화적 언어로 재출력해냄으로써 그것들은 조금 더 중요해진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페인터는 프린터, 즉 인쇄-기계와도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같은 내용의 글을 주고 필사를 시킨다고 할 때, 각자의 필체에 따라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혹은 같은 레시피로 요리를 한다고 할 때 미묘한 차이와 솜씨에 따라서 서로 다른 요리가 만들어지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뤽 튀만스나 마를렌 뒤마가 사진을 그린다고 할 때, 어떤 것을 왜 그리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그들이 특정 이미지를 선택하는 이유와 맥락이 작업의 요점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의 source material 혹은 references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something to think about.

Czech Philharmonic Orchestra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콘체르토와 심포니 5번. 반복적이고 집단적인 collective 움직임이 리듬을 이루고 그 위에 선율이 올라가는 형식이 자주 등장했다. 16비트가 일종의 그리드로 작용하고 서로 다른 사운드가 프레임 안에 등장하고 퇴장하기를 반복하는 테크노 등의 전자음악 장르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첼로 콘체르토에서 첼리스트로 협연한 사람이 실내악 공연에서 보기 드문 흑인이라는 점이 무척 생경하게 다가왔다. 패턴도 컬러도 볼드한 셔츠를 입은 그는 걸음걸이마저 격식 없이 캐주얼했고 그걸 바비칸 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오케스트라는 나뉘어진 부서별로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는 회사의 구조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철저히 계획된 움직임을 때맞춰 수행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모든 움직임이 사전에 약속된 것이고 각 패밀리는 어느 시점에 나서야 하는지 이미 서로 그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무수한 약속들 promises 의 집합인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음악이라는 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중에 발생하는 부산물이며 그러므로 명확한 기능성을 띠는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용 공연에서라면 그 반대가 적용될 것이다. 움직임이 본 목적이라면 그 과정 중에 발생하는 몸과 몸이, 몸과 바닥이 마찰하면서 만들어지는 작은 소음들이 부산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부수적인 정보들이 퍼포먼스의 프로세싱에 관한 더 전체적인 그림을 제공하기 때문에 감상이 풍부해진다. 음원으로 들을 땐 보이지 않는 '준비'의 자세들이 무대에선 훤히 보인다. '이제 곧 바이올린이 등장하겠구나.' 그래서 어떤 실상을 보게 되는 것이 공연에 갈 때의 즐거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일을 했다. 매너가 아주 좋은 어린 남자아이와 그의 할머니가 내 오른편에 앉았다. 둘의 좌석은 떨어져 있었던 모양인지 인터발 이후 좌석의 주인이 있으니 원래 좌석으로 가서 앉으라는 요구를 했다. 나에겐 별 차이가 없는데 그들이 같이 앉는 것과 따로 앉는 것의 차이는 꽤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리를 바꿔 드렸다. 갑자기 바꾸어 앉은 자리가 자기 자리라는 아저씨가 등장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그가 예매한 티켓은 내일 공연이었다. 아저씨는 엉뚱한 티켓을 가지고 와서 이미 1부를 본 셈이다. 그는 미안하다며 이내 사라졌다. 2부가 진행되는 동안 할머니 어깨에 기대어 음악을 듣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까지 마음이 따듯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면서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인사하는 아이에게 웃어 보였다.

08 MAR 2025

오늘도 결국 씻고 나가지 못해서 꼬질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두세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심포지움은 하루 종일 걸쳐서 진행되는 행사였다. 사실 아커만의 대단한 팬이라고 하기도 힘든데 어쩌다 보니 벌써 몇 차례씩 그의 영화를 보고 특집 매거진을 사고 전시와 심포지움까지 간 셈이 되었다. 렉처에 있어선 연사의 화술과 전달력이 컨텐츠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실감했다. 내용이 좋아도 들리지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법이지 않은가. 어느 대학에서 영화에 관해 강의를 하거나 평론을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샹탈 아커만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대중을 겨냥한 교양 강의라고 하기엔 조금 더 깊은 내용을 다루었다. 몇 달 전 파리에서 다녀온 전시나 얼마 전 상영관에서 본 작품들을 다루고 있기도 해서, 사전지식이 있는 상태로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다. 이런 자리에 참여한 것도 학교를 다닐 때 이후론 무척 오랜만이었다. 그때도 크리틱이든 아티스트 토크든 아침부터 다섯 시 무렵까지 하루 종일 진행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계속 밀도 높은 이야기들을 몇 시간 연속으로 듣고 바깥으로 나오니 뇌가 얼얼해진 느낌이 오랜만에 들었고 그 피로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심포지움을 마무리한 학자-작가-크리틱 B.Ruby.Rich. 홀로코스트에 관한 가족사적 배경과 자살로 마무리된 그의 삶 등 알려진 몇 가지 요소들로 인해 아커만의 이미지가 다소 어둡게 비춰지는 것이 아쉽다고 말하면서 오래 전 그와 본인이 진행한 인터뷰의 일부분이 담긴 비디오 클립을 공유했다. 영상 속에서 아커만은 아버지가 자신이 만든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처음 봤던 때를 회상하면서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제가 기억하는 아커만은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웃기도 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 마음이 무척 다정하게 들렸다.
연구하고, 평론하고, 번역 따위의 일을 하는 심포지움 참여자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더 마음이 심란해졌다. 다들 어떻게 해서 저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걸까, 저 사람들은? 어제 본 페이터 노아 데이비스는 페인팅으로 망하더라도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Sam도 학계에서 벗어나서 다른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아무런 모습도 그려지지가 않는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꽤나 큰 불이익을 내게 가져다 준다는 생각을 했다. Disliking people is a great disadvantage in livung in this world. 오늘따라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생각 없이 잠들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나만 아는 비밀로 남겨둘 것이다. 그러면, 내일이면 사라질 것이다.
이제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요즘이었다. 지금 나쁠 게 하나도 없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는 더 멀어지기만 할 것 같다는 걱정이 틈만 나면 무의식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런데 또 그러다가도, 나는 이 값진 시간을 어쩌면 알아서 잘 쓰고 있는 중일 거라는 나에 대한 이상한 신뢰를 품게 되기도 한다. 다 괜찮을 것이고, 지금 이것 또한 나의 선택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된다고. 마이크 밀스의 인터뷰를 읽다가 이 사람도 파인아트를 전공했지만 동료들과 다른 길을 택했다는 것을 알고 또 한 번 마음이 놓였다. 내가 지금 미술계에 대해 느끼는 이물감과 피로를 이 사람도 느껴봤겠구나, 하고. 게다가 내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언급했음에 무척 놀랍고 반가웠다.

09 MAR 2025

C'mon C'mon
by Mike Mills. Very soft and gentle film as always. Viv takes care of her husband, Jesse's father and Johnny takeks care of Jesse who is left without his mother. (Viv decides to be a husband of Paul instead of the mother of Jesse for a moment. Because Paul needs a care. But Jesse has to bare her absence because of Paul. It is not surprising if Jesse hates Paul in some way.) People take care of the loved ones who are sad, who are never understandable. Kids, they always know some things are going on. They feel it, or maybe sense it. But there are always nothing allowed for them. They are always forced to watch things burn into ashes. Broken children become broken adults. 어른들도 모르는 것이 있고 아이들만 아는 것이 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을 배척하곤 한다. 어른들의 문제에 끼어들 수 없는 아이의 위치. 이해할 수 없는, 아픈,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느라 바쁜 사람들. 제시에게 조니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녹음 장비 - 말하자면 일종의 권한 - 를 흔쾌히 아이에게 맡기는 조니의 태도.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그러면서도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면서 무언가를 알려주는 법은 어렵다. 어른들은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들의 도움을 점점 더 찾지 않게 되기는 했어도. 삼키는 연습을 오래 했고 감추는 솜씨가 늘었을 뿐, 그렇게 소외감을 티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사이 나에게는 따라갈 만한 어른이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혹은 선생님들도 대체로 그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영화 벌새가 떠오르기도 했다.
극중 조니는 인터뷰를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다. 아이들이 그리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묻는 것이 주된 질문이고, 그 인터뷰에선 답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지켜진다. 인터뷰와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오가는 문답은 명확히 나뉘기보다 오버랩된다. 제시는 조니에게 왜 혼자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왜 엄마와 친하지 않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어른이 질문을 하고 아이가 답하는 구조는 일방향으로 유지되는 대신 뒤바뀌는 순간이다. 제시가 하는 질문들은 어른들 사이에서라면 상대의 선을 침범하는 질문으로 여겨질 위험 때문에 서로에게 하지 않는 종류의 질문들이다. 그러나 아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은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묻는 질문에는 항상 대답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어른의 곤혹스러움이 보이는 장면들도 있었다. 아이와 어른을 수직의 관계가 아닌 동등함으로,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의 소통으로 그려낸 영화. 늘 수수하고 부드럽게, 온화하게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리는 감독. 언제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는 느낌을 들게 한다. 오만하지 않게.

널 외롭게 하지 않을게. 절대로.

오늘은 오랜만에 요리를 했다. 맥주를 홀짝이며 카레를 한 바가지 만들었다. 며칠간 끼니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또 문득 아카이브 페이지에 지도를 추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런던의 맵을 그리고 페이지 링크까지 걸었다. 이렇게 가볍게 시작해서 만든 것이 실제로 페이지를 훨씬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을 보니 앞으로 디자인이라는 영역에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방향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12 MAR 2025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누가 시킨 것도, 돈을 받는 것도, 심지어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데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디지털 공간에 집을 짓고 있는 것이 내가 생각하도 조금 이상하다. 웹페이지 이사를 마쳤다. 카고에서 웹의 옵션들을 경험히고 나서, 그 레이아웃을 직접 코드로 구현하는 연습. 카고-의존도를 낮추고 싶어서였다. 역시 한 번 시작하면 내 마음에 들기 전까진 멈출 수가 없다. 씻지고 먹지도 않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아침에 부엌에 잠깐 갔다가 하늘이 선명한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번 해둔 카레로 며칠 내내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현미밥을 먹고 있는데 내 밥솥이 이렇게 엉망이었던가 싶다. 한 시간 이상씩 불리는데도 돌 씹는 것처럼 딱딱하다. 그래도 양분이라고 생각하고 먹는다. 맨날 술과 커피만 마시다가 졸도할 것 같은 순간이 오고야 만다. 카레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그래도 에스프레소와 슈케트 두 조각이 날 더 즐겁게 한다.
I'm building a digital library. 나는 여기에, 무게가 없는, 기존에 있는 플랫폼을 빌리지 않는, 독자적인 공간 구축을 히려고 하는 거야.
불안하다. 딱히 할 것도 없고 배가 고픈 것도 전혀 아닌데 너무 불안해서 마시고 씹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사실 담배를 피운다고 해결되는 불안도 아닌지라 일부러 자제하고 있다. 이 불안은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몇 차례의 여행을 통해 알았다. 목적도 없이 부유하는 짓은 이제 그만해도 좋다. 그러고 보면 평생을 도망치며 살아온 것 같다. 내 무의식 속에서 날 괴롭게 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일까? 영국으로 온 것도 일종의 도망이었다. 도망쳐 왔지만 여기라고 다를 건 없다. 난 대체 왜 이렇게 고집스러워서 이 세상에서 살기 어렵게 타고났을까. 예술이나 독립 비평가 따위의 자영업을 하자니 수고스러운 일이 많아진다. 오히려 사람 대할 일이 늘어나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내가 피곤해. 그래서 그것의 가장 소프트한 버전이 아카데미아와 대학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서 욕심나는 것이 점점 사라진다. 원래도 있지가 않았는데, 그나마 내가 좋아하고 열심이었던 게 아름다운 것들이었는데, 그 순전한 아름다움만으론 이 미술계에서 이길 수가 없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게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할 수가 없다. 점점 더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일하고 무언가를 꾸리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을 여실히 깨닫는다. 지금 와서 보면 극도로 비사교적인 부모님의 영향이겠지. 난 이 세상과 친하지 못하다. 이 세상의 소란스러움, 대체로 욕망에서 비롯되는 모든 소란들에 휘말리고 싶지가 않다. 난 나만의 안전지대, 은신처를 늘 필요로 했고 그게 나에겐 이런 종류의 무엇이었다. '취미'를 가꾸는 일. 그건 엄밀히 따지면 창작에 대한 열정도 아니다.
나는 약 십여 년 전부터 나의 심경의 흐름을 초분 단위로 파악하는 작업에 몰두해왔던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느낀 것, 어떤 영화를 보고 생각한 것, 내가 만난 사람과의 대화, 무언가를 만들면서 하는 생각, 그 모든 것들. 나에겐 언제나 그 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소지한 물건들, 구입하는 것, 이동의 경로까지도 데이터화하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나를 일종의 실험 대상으로 두고 이 세계를 파악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나를 수단 삼아서 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는 것뿐이므로 - 절실한 시도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진. 자주 하는 생각은 사람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든지 영화도, 실체는 없지만 소설도 모두 사람에 대한 것인데, 나는 왜 한 번도 피사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까?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여전히 사람을 찍은 사진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 사실 요즘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진 자체를 잘 찍지 않는다. 거의 2013년부터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12년 가까이 관심을 가져온 매체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찍어서, 그렇게 기록해서 뭐하나 싶은 생각도 자주 든다. 기억하고 싶어서, 기념하기 위해서. 기억과 기념. 기억은 사진을 찍고 시간이 흐른 후의 어느 날을 위한 것이라면 기념은 보다 그 순간에 관한 것이다. 그 비슷한 듯하면서 서로 다른 두 가지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것은 언제나 찍는 행위에서 그치고 내가 정말로 한평생 기억하는 것들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정말로 이해하게 된 후로는 사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같다. 기억은 지키고 싶다고 지킬 수 있는 것도,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게다가 나는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곳에 온 이후론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들을 모두 처분하는 것에서 쾌감을 얻기도 했다. 사진이 단지 추억에 관한 거라면 난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들을 버리는 일, 나를 비워내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건 새로 태어나는 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 순간을 기억하는 것보다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나의 글쓰기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바. 읽기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읽히기 위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말이다. 다만 카메라로는 눈 앞의 현상을 찍지만, 글쓰기를 통해 남겨지는 것은 어쩌면 눈앞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여러 차례 생각해 봐도 자극적인 매체이다. 클릭 한 번으로 장면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 수고로움 없이 손쉽게 순간을 소장할 수 있다는 것은 카메라라는 기계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13 MAR 2025

런던을 떠난 지난 8월 이후로 한 첫 베이킹. 나머지 손이 많이 가는, 조금 더 본격적이기 위한 도구들은 처분하고 처음 시작했던 베이직한 로프틴만 남겼다. 역시 평소처럼 와인을 따라 놓고 작업에 착수했다. 술을 마시면서 손을 쓰는 작업은 늘 즐겁다. 오븐이 말을 들ㄱ을지는 의문이지만 이렇게 할일을 마치고 기다리는 시간이 나에겐 늘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다. 암실 작업 후 사진을 말리는 시간도 항상 그랬다. 마치 기다리는 물건이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시간만큼은 그냥 흘려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그 완성된 것을 생각하며, 그것에 대한 꿈을 꾸며 보내는 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도 늘 그랬다. 그들을 기다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 때의 기쁨. 보장된 행복이랄까. 명민이 나를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올 때마다 아, 오늘도 즐겁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다시 떠오른다. 참 듣기 좋은 말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이미 보장된 즐거움을 안기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은 말이다.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단지 함께 일 년을 살았기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사이 나와 그 사람이 쌓아온 신뢰가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구나. 내게 그런 사람이 있어서 나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가 않은가 보다. 감사할 일이다.

16 MAR 2025

아카이브 페이지 이사를 마쳤다. 십 년만에 다시 쓰기 시작한 seelong. 목요일 새벽쯤 작업에 착수했으니 나흘만에 완료한 것이다. 깃허브에 페이지 컨텐츠를 업로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이 상당히 곤란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기존 폴더에 있는 파일을 수정한다고 깃허브에 올라가 있는 파일에 그 수정 내역이 반영되지 않는다. 그런데 웹버전의 깃허브는 파일 이름을 바꾸는 작업이나 파일을 삭제하는 것조차 여러 번의 클릭을 거쳐야 하는 상당히 번거로운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어제 새벽엔 코드 하나를 바꿀 때마다 개별 파일에 들어가서 일일이 변동 사항을 수작업으로 적용시키고 업데이트하는 데 시간을 다 썼다. 이 둘 사이에서 도무지 무엇을 기준으로 작업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오늘 다시 어떤 방법이 없는지 알아봤더니 vs코드에서 깃허브 리포짓토리를 불러올 수 있고 여기서 수정과 업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만 라이브 뷰어는 이용을 할 수가 없는 듯하다. 그래도 텍스트를 추가하거나 일기를 여기다 쓰는 게 무리가 아니게 된 것만으로도 안도했다. 아마도 이곳은 시공을 마친 건물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안에 약간의 내부 공사를 하는 건 가능할지라도 대폭 수정하는 건 안된다. 혹은 굳어버려서 더 이상 성형을 할 수 없는 흙반죽 같기도 하다.
어제도 밤을 지새운 탓에 아침 아홉 시에 잠들어 거의 오후 세 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이런 습관을 좀 어떻게 바로잡기는 해야 하는데 문제가 눈에 보이면 그걸 해결하기 전까진 멈추질 못하는 집착적인 성격 탓에 밤낮이 바뀌었다. 아침마다 눈을 떴다가도 다시 잠들어 버리는 일이 반복되는데 그때마다 침대에서 벌어지는 그 자기 기만과 최면의 정도가 스스로 놀라울 지경이다. 내 무의식과 본능에 한껏 복종하는 이성. 무의식과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약한 내 이성. 괜찮지만 발란스는 중요하다. 규칙이랄 것이 없는 나에겐 약간의 그리드가 필요하다. 차이와 반복. 리듬. 안정과 불안정.
I am focusing on the flow of my life. 넌 돌려줄 수 없는 것을 받는 것이 불편한 사람처럼 보여. 잘해주면 꼭 싫어하더라. 하기야 나도 엄마의 관심에 숨이 막혔던 적이 있잖아. 어쨌든지 삶의 기준점은 내 안에 있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Mateo는 곧잘 말하는데, 내가 자기 때문에 상처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만히 보면 오만하게 들리기도 한다. 화낼 것도 실망할 것도 이젠 없다. 난 어쩌면 지난 해의 날 휩쓸고 지나간 몇 차례의 사랑들, 여전히 유효한 사랑들로 더없이 자유로워졌는지도 몰라. 난 더 이상 그런 것들로 슬퍼하지 않아. 그런데 며칠 전에는 50년 후에 있을 일 때문에 눈물이 고였어. 내가 평생 알고 지내던 그 모든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는 시기가 찾아올 때에 대한 두려움으로. 여자로서의 반짝임을 잃게 되는 시기가 두렵다고 했던 명민. 파트너 없이 혼자 늙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던 혜리. 다들 어떤 두려움들과 싸우며 살고 있을까? 나는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사는 것 같아. 내가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을 하는 대신 엉뚱한 것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허송세월에 대한 우려인 것이다. 나는 바라는 것은 별게 아닌데, 아마도 엄마가 나에게 바라는 것도 그저 자기 앞가림 하면서 적당히 성실한 삶을 사는 것,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사는 것일 텐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역시 내 몫이다.
나는 무수한 컨텐츠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 그 생산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의 습관 같은 것인데, 그것은 도큐멘팅의 형태로 정의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모으고, 그것들로 어떤 유니버스를 구성하는 일. 선택select과 편집edit 을 통해 구축되는 세계. 그러니까 나는 낱개의 페이지가 아닌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웹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디지털, 즉 비물리적인 공간을 쪼개고 각각의 조각에 기능을 부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내가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을 퍼블리싱할 것인지, 무엇을 개인적 차원의 리소스로 보관할 것인지 두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쓰는 글에 좋은 생각들이 많이 있다고 믿지만 한 차례의 프로세싱을 거치는 것과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단은 사람들이 몰라도 되는 것들, 가까운 사람이면 모를까 모두가 굳이 알기를 바라지 않는 개인적인 것들이 내 생산물에는 더러 섞여 있기 때문이다.

18 MAR 2025

인생이 이따금씩 던져 주는 농담 같은 하루를 보냈다. 약 3년 전에 길에서 만났던 사람을 영화관에서 만난 것이다. 그때도 영화를 찍고 있었던 그는 3년 사이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장편 필름 하나를 완성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다음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작년에는 무려 두 차례 한국에 다녀왔다고까지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가 날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건 잘 알겠다. 그는 세렌디피티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날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이 운명적인 사건인 것처럼 말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있을 법도 한 일이다. 어쨌든 나는 그 사람이 싫지도 좋지도 않다. 외모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그는 말이 너무 많다. 그래, 너무 수다스러운 거야. 본능적으로 그런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편인 것 같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내가 전부 알고 그에 대한 약간의 소견마저 있으니까 그는 마치 우리가 통한다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이루마의 음악은 듣지 않지. 하지만 그걸 굳이 말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적당히 반응한다. 관심사와 그것들에 대한 호(불호)로 점철된 대화. 하지만 그런 대화는 누구하고나 할 수 있고, 이미 나에겐 충분히 좋은 대화 상대들이 있으며,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가까워져야 하는 법은 없다.
무심코 들어간 홀푸즈에서 간식거리들을 샀다.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냥 지나가는 대신 들어가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치즈 섹션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간 치즈 가게에 갈 때마다 그게 그것처럼 보이는 치즈들 틈에서 도무지 어떤 걸 사야 할지가 늘 곤혹스러웠는데, 이곳은 각각의 치즈에 대한 상세한 텍스트가 적혀 있어서 그걸 읽고 알아서 고르면 되는 방식이었다. 물론 치즈 썰어 주는 사람이 치즈만 썰려고 거기 있는 게 아니고 추천이든 설명이든 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 텍스트를 속에 저장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래서 컴퓨터에 명령어를 입력하면 답변이 나오는 것처럼, 그저 질문하기만 하면 치즈에 관한 정보를 전해 줄 사람. 그렇다면 그 많은 양의 텍스트를 일일이 프린트해서 진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쌍방의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정보 제공이니 궁금한 것이 있어도 텍스트에 적힌 내용 이상을 알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세일즈에 있어서 사람을 쓰는 편이 더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있겠지, 가게마다. 하지만 고객은 일단 그 사람과 대화를 시작 해야 하고 그 수고가 싫은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다. 혹은 물리적으로 목소리를 내질 못 하거나 그 나라 말을 할 줄 모르면 이용하지 못한다. 혼자 해결하는 버릇이 너무 깊숙이 든 나는 어딜 가도 바로 웹서칭을 하거나 텍스트를 읽기를 택해 왔고 그래서 이 치즈 섹션의 방식이 편했다. 그런데 사람에게 말을 걸고 도움을 청하는 시도를 좀 더 해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가게에서 하는 것은 거래가 아니라 소통이고, 그들은 기계에 가까울지언정 사람이기도 하다는 점을 자주 잊는 것 같다. 그들은 나한테 물건 파는 기계이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다.
A와 B라는 정보를 얻었을 때 그것을 합성해서 C를 얻어내는 지적인 프로세스에 대해 생각했다. 원자 폭탄의 핵분열 같은 연쇄적인 합성, 자체적인 무한 증식의 체계가 학습의 기초를 이루고, 지식의 범주가 그런 원리를 기초로 지금껏 확장되어 온 것이 아닌가. 여기서 접근 가능한 리소스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 내가 지금 런던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매주 도서관에 가는 중이다. 대출은 불가, 미리 예약해 둔 자료를 받아서 읽다가 서가에 맡기고 오는 방식이다. 끝내지 않은 책을 일주일씩 보관해 주는데 매주 가면 다시 일주일이 연장된다. 시기를 놓치면 온라인으로 다시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이 꼭 꾸준한 관심을 가져 줘야 하는 듀오링고 같다. 어쨌든 도서관 방문을 독려하는 나쁘지 않은 룰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지각과 결석을 하면 벌금을 내야 했던 해커스 어학원의 스터디 규칙이 떠올랐다. 잘하면 얻는 것이 있는 게 아니고 잘하지 못하면 잃는 것이 생겨서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규칙. 당시 열일곱이었던 나는 그냥 규칙이라고 하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규칙이었다. 그러니까 지각도 결석도 없이 해야 할 것을 완벽하게 다 해도 그게 당연한 구조다. 안 하는 게 어딘가 잘못된, 그러므로 자잘히 죗값을 치러야 마땅한 일이다. 플러스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닌, 마이너스를 막아야 하는 방식. 게다가 모인 돈으로 마지막에 버터핑거 팬케이크를 사 먹었던 게 생각 난다. 누군가가 지각할 때 나는 지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 사람이 게을렀고 나는 게으르지 않았으니까, 그 결과 팬케이크를 공짜로 먹는다. 게으른 사람 돈으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을 위한 식사를 마련해 주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돈이 그 규칙의 중심이다. 엄청나게 자본주의적인, 위너와 루저를 가르고 루저의 벌금을 위너가 갖는 게임. 아직도 그런 스터디가 있으려나.

Thomas Ruff
David Zwirner에서 토마스 루프의 전시를 보고 왔다. 역시 이미지 스케일에 따라 감상의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이 작가의 작품을 실물로 볼 때마다 느낀다. 이미지 자체로는 새로울 것이 없기도 하지만, 사진이 아닌 모든 것일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대형의 이미지가 사실은 사진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추상회화의 일종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정말로 회화였다면 오히려 진부했겠지만. 결과물이 같더라도 그것이 어떤 매체로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만들어졌는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것이 되기도 한다. 타피스트리로 만든 작업의 경우 직물의 입자가 이미지의 픽셀과 대응되면서 그 자체로 엄청난 고해상도의 이미지로 보였다. 세포 하나 하나가 살아 있는, 디지털 이미지로 치면 픽셀 하나 하나가 타피스트리의 한 땀으로 실물화된 느낌.

20 MAR 2025

오늘도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 왔다. 오늘은 리히터의 랜드스케이프에 대한 글. 사진과 페인팅을 긴밀한 관계로 다루는 작업자는 수도 없이 많지만 주관성과 객관성, 페인팅이 그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해낸 사람은 리히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을 철학의 중심으로 돌린 칸트의 획기적인 - 코페르니쿠스적 - 발견에 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을 직접 보면 사실 대단한 감동이 있지는 않다. 다만 우선 완성도가 빼어나다는 점을 오래 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다. 이미지 자체에서 어설픔이랄 것이 없다는 점. 보기에도 좋은데 취지마저 좋은 페인팅이라는 점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을 것이다. 오늘 살펴 본 글에서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방식은 꽤 면밀하고도 간명했다. 사진을 페인팅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사진의 권위를 페인팅 쪽에서 나누어 갖도록 유도하는 전략. 두 매체 모두 모자람 없이 사랑하는 나로서는 어쩐지 환희로운 감각에 젖어들게 되는 대목이었다. 튀만스도 그렇지만 리히터의 길을 따라가는 페인터들 역시 흔히 보인다. 나도 이미 그 중의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늘 '사진적인', 사진의 문법에 의거한 그림들을 더 가깝게 느꼈고 좋아했다. 그것들이 항상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문법이 없는, 고유한 언어로 말하는 그림들은 나에겐 그더 모르는 말이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를 동시에 공부하면서 그 언어를 구성하는 문법적 요소들이 모양과 소리는 다르더라도 구조적으로 무척 유사하다는 점을 자주 느낀다. 아시아권의 언어를 번역기에 타이핑할 때 그 거리감을 체감한다. (물리적 거리와 문화적 거리는 역시 함께 간다.) 공통 문화권의 각기 다른 언어들이 공유하는 문법적 구조가 이미지에서 사진매체가 제공한 공통의 시각적 규칙과 유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구조는 무척 수학적이다. 언어의 실체를 이루는 것이 발화의 방식과 문자의 형태라면 사진을 실체화하는 것은 페인팅에서의 페인트, 그리고 프린트에서의 잉크일 것이다.
내일이면 마테오와 함께일 거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와 몇 달만에 영상통화를 하는데, 사실 무슨 대화를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를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 하는 해석을 장황하게 하는 것이 순전히 나의 판단 judgement 에 그칠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습관적으로 나는 모든 사람들을 내 관점에서 평가하곤 한다. 그 내용은 전부 가설들에 불과하다. 그는 어쨌든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고 있고 업무차 런던에 방문한다. 교통비와 숙박까지 회사에서 전부 해결해 준 것을 듣고 다시 한 번 다름을 느꼈다. 내가 그런 삶을 사는 사람과 함께할 수가 있을까. 무슨 얘길 나눌 수 있을까. 하지만 만나면 또 곧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리고 내가 아끼는 친구들의 절반은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 차이랄 것은 크게 보면 절대로 좁힐 수가 없는 거리이고 좁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느낀 무색함을 지울 수는 없었다.
내가 본 그는 좋은 것만 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뉴스에는 왜 항상 추악한 사건만 보도될까, 질문하는 행인들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고 그가 말했던 적이 있다. 좋은 소식이 한 개라면 나쁜 소식이 아홉 개라고. 나도 그것이 애석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다. 그를 작년 10월에 만나서 그새 반 년이 되어 간다. 런던에 돌아오고 나서 그와의 관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고 마음을 접기도 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막상 그가 런던에 온다니 먼저 드는 마음은 두려움이었다. 그간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를 보면서 배운 것들이 많았고 또 상처 받기도 했다. 이미 시간이 흘러서 좋은 것만 남은, 그 과거가 세워 둔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전과 같지 못할까봐. 그리고 다시 찾아올 기약 없는 이별이 벌써 싫었다.
하지만 이전이랄 것은 없다. 그때는 그때, 이번은 이번. 알게 되리라. 닫아 둔 마음을 열어야 할 때. 그로부터 받은 마음을 돌려줄 기회. 서울과 파리에서 함께하고 런던에서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값지다. 늘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곳에서 그치곤 했다. 런던에서 지낸 지 벌써 삼 년차가 되어 가고 이미 이 도시는 나의 일부가 되었다. 떠나게 될 것이 분명해지고 나니 일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사라졌다. 이만큼의 자유는 내 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로, 이토록 충만한 자유를 한껏 누리기로 했다. 이 시간을 행복하게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이면 다가올 마테오와 시간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 이 자체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우리는 더 이상 끝을 두려워하지 말기로 해.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 나에겐 가장 큰 공포였고 여전히 그렇지만, 우리 그걸 생각하지 말자. 결국 모든 것의 끝은 오게 되어 있고, 궁극적인 끝이란 죽음일 테지만, 죽음과 함께하면 된다. 죽음과 불화하지 말 것. 인간인 내 주제에 영원을 욕심내지 말 것. 삶의 일부인 죽음마저 사랑할 것. 그것이 나의 다짐. 축복하자.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는 죽음에 대한 사랑을 포함한다. 매 순간 조금 더 용감해지자. 모든 것을 사랑하자. de toute son âme.